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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려시대 문벌귀족 사회변동 쉽게 읽으면서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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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문벌 귀족의 사회 동요   호족10C→  문벌 귀족12C→ 무신 정권→권문세족,신진사대부

고려시대의 주요세력에 대해 알아보자. 나 공부하려고 정리한다.

고려의 가장 큰 특징은 귀족사회라는 점이다. 고려를 세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지방에 살고 있던 귀족인 호족들과 6두품이다. 그 호족 출신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 당시 지방 호족들의 파워가 엄청났기 때문에 왕건은 지방 호족들을 감싸 안으며, 또는 견제하기도 하며 여러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기억난다.

12C 많은 호족 중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귀족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문벌 귀족이다. 문벌이라는 뜻은 상위 1%인 가문들을 뜻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경원 이 씨 이자겸이다. 이자겸의 남매, 딸들은 모두 다 왕들과 결혼을 했다. 이것으로 파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문벌 귀족은 왕실이나 유력한 가문끼리 서로 윈윈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도록 그들만의 문벌 귀족을 형성한다. 12세기에 바로 문벌 귀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고려를 섬기던 여진족은 금나라로 성장해 고려에게 사대 관계를 요구하였고, 금나라와의 사대를 수용한 시기이다. 이 문벌 귀족은 힘에 센 만큼 음서나 과거제를 통해 주요 관직을 독점한다. 공음전과 전시과를 통해 대농장의 지주가 된다.  땅이 넓으니 가난한 농부들에게 먹을 것을 빌려주고 몇 배의 높은 이자를 받아 먹는 고리대를 하며 농민들을 힘들게 하였다. 농민들을 아주 힘들게 한 문벌 귀족의 주인공들 이자겸, 최충, 김부식이 대표적이다. 벌레충 같은 자겸이 부식시킨 고려다.  

 

  이자겸의 난 / 인종 VS 이자겸(1126)

그때 사건이 일어난다. 인종이 왕으로 있을 때 왕보다 더 권력이 높아 설치는 이자겸이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자. 게다가 인종 할머니는 이자겸의 딸이고, 인종의 부인도 이자겸의 딸이다. 족보까지 이상해지니 말이다. 인종은 이자겸을 처리하기 위해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였고, 그 사실을 알고 이자겸은 난을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하였다. 그것이 이자겸의 난이다. 다시 인종의 지시를 받은 이자겸의 부하 척준경이 이자겸을 제거함으로써 이자겸의 난은 실패하였다.

이 시기의 왕권은 약화되고 이자겸의 난으로 문벌 귀족사회가 점차 동요되기 시작한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1135)

이자겸이 금과 사대 관계를 수용하고 이후 금나라가 고려에게 군신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고려가 왜 금나라를 섬겨야 하는가? 하며 이후 스님 묘청이 등장한다. 묘청은 풍수지설과 불교를 바탕으로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 라고 주장하는 서경파로 서경 천도 운동을 하였다. 즉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평양)으로 옮기면 나랏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래서 서경천도하자! 금나라를 정벌하자! 우리도 금나라와 대등하게 황제 칭호와 연호를 사용하자! 라고 인종에게 주장을 한다. 인종은 그것을 받아들여 서경(평양)에 궁궐을 짓고 하는데 그 때 개경에 사는 개경파 김부식이 등장하여 반대한다. 왜? 김부식(개경파)이 사는 수도를 옮기면 권력의 힘이 약해지니 이런저런 얘기로 인종을 설득시킨다. 인종은 또 김부식의 말을 듣고 서경 천도를 없었던 일로 해버린다. 이에 화가 난 묘청이 난을 일으킨다. 역시 김부식의 제압으로 묘청의 난은 실패한다. 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훗날 신채호의 "일천 년래 제 일대사건"이라 칭찬하며 평가하였다. 즉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것은 자주적인 독립  운동 같은 의미라 생각하면 된다. 이 사건으로 고려인의 자주정신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다시 한번 문벌 귀족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잠깐 개경파와 서경파를 정리해보자.

 

개경파(김부식)는 주요 세력은 벌 귀족이며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대외정책으로는 금나라와 사대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신라 계승 의지가 강하였다.  
서경파(묘청) 주요 세력은 묘청과 서경의 신진 관료들이며 승려이기 때문에 불교와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한다. 대외정책은 금나라를 정벌하자, 칭체 건원 등 고려만의 자주적인 외교를 주장하였고, 고구려 계승 의지가 강하였다.

 

무신정변(1170) -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며 정권을 잡게 되었다. 무신정권기

무신들은 말을 타고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호위하는 역할, 몸을 쓰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공부하고 집안 좋은 문신들은 몸을 쓰는 무신들을 엄청나게 무시한다. 문신들의 중심인 문벌 귀족사회에서 무신들은 끊임없이 차별을 받아오며 생활을 하였다. 그 증거는 과거시험에서는 무과 시험이 없었으며, 그 이야기는 주요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하급 군인들에게 월급으로 주는 군인전도 지급하지 않았다. 의종 때 사건이 터진다. 정자에서 여러 관리 들과 함께 놀다가 나이 어린 문신이 보초로 서 있는 할아버지 뻘 되는 무신을 놀리며 수염을 불에 태워버린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무신들은 보현원에서 모조리 제거해 버리며 정변을 일으킨다. 무신정변(1170)이다. 그 이후 무신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의 순서대로 정권을 잡는다.

 정방--------------------------------------    교정도감-------------------------

무신정권기에는 쉽게 말해 무식하게 정치했다. 그래서 더 농민들이 살기 힘들었다.라고 기억하면 된다. 이의방부터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 서로 죽임을 반복하며 지도자 자리에 올라왔으며, 최씨 이후로는 대물림 하면서 정권을 잡게 되다 보니 최씨 정권기라 부른다.  무신들은 기존의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한 행정기구를 축소해버린다. 그 예로 이의방은 중방을 만들어 최고 회의 기구를 만들어 모여서 회의를 하였고 이 중방은 최충헌이 교정도감으로 개편하였다.  중방, 교정도감은 즉 최고 회의, 권력기구와 같은 말이다. 경대승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보디가드, 사병집단인 도방을 만들었다. 최우는 인사행정기구인 정방, 만들어 집에서 관직을 정해주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삼별초 특수부대를 조직한다. 삼별초는 이후 몽골에 항쟁에 무신집권기의 군사적 기구는 도방과 삼별초라 이야기할 수 있다. 중방, 교정도감, 정방 중교정이라 외우자.

 

문신들이 난을 일으키다. 조위총의 난, 김보당의 난.

무신정권으로 찌그러져있던 문신들은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해 난을 일으킨다. 1. 조위총의 난, 2. 김보당의 난이다. 문신들이 일으킨 난이라고 기억하면 된다. 이어서 농민들도 점점 살기 힘들어지자 불만은 점점 쌓여가게 되고 반발하며 봉기를 일으킨다.   

농민 봉기 -망이 망소이의 난, 김사미 효심의 난.

 위에 나온 무신정권기의 이의민은 하층 계급으로 불릴 만큼 신분이 낮았다. 그런데 그 천민이 최고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되었고, 농민들을 잘 살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심해지는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화가 났다. 봉기를 일으키고 너도나도 지도자가 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망이 망소이의 난 , 만적의 난이 있다. 망이 망이의 난은 고려의 특수행정구역 기억해보자. 향리가 관찰하는 향, 부곡, 소이다. 이 구역 공주 명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인데 위와 말한 것 같이 "소"의 차별과 수탈이 너무 심해지자 농민들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신분 상승 운동 전주 관노비의 난,  만적의 난 이 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였다. 노비 출신 천민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보자! "왕후 장상(재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며 신분 상승 운동,신분 해방 운동을 한다. 이 말은 왕이 될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다.라며 외쳤으나 실패하였다.   

10번씩 읽으면 외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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